2015년 8월 4일 화요일
Case #29 - 분노한 여아동 기르기
케이시는 케이시의 아버지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을 품고있었다. 나는 왜 그런 감정을 품게 되었냐고 물어보았다. 그녀가 답하기를 그녀의 아버지는 케이시가 4살일때 어머니와 이혼을 한게 이유라고 했다. 나는 그녀의 필드, 의식하고 있는 현실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이야기의 일이 일어난건 20년전이고 그녀가 그 후로 아버지를 본건 10번이었다. 그녀는 그녀의 아버지에 대해 잘 알지 못하였다. 그녀는 그녀의 어머니를 피해자로 알고있었다. 그녀의 아버지가 불륜을 일으켜 재결혼을 한것이라 했다. 그녀는 어른이 된 후에 자신의 아버지와는 전혀 대화하려는 노력을 보이지 않았다한다. 내가 왜냐고 물었을시, 그녀는 한번 새로운 딸을 데리고 자신을 보러 온적이 있다고 했다. 그녀의 아버지가 하프시스터에게 잘 해주는 것에 대해 아주 많은 질투심을 느꼈다한다. 나는 그녀의 부모님들의 이혼과 그녀의 아버지에 대한 분노에 대해서는 세션을 이끌지 않을거라했다 (이 문제들은 그녀의 문제의 핵심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그녀를 성인으로서 대하려하고 그녀가 현재로 돌아와서 할 일을 찾아주고 싶었다. 그녀는 머뭇거렸지만 정해진 바운더리는 아주 분명했다. 나는 내 자신의 이혼한 일에 대하여 이야기를 했다. 이혼할적에 나의 가장 큰딸이 다 컸을때 나눈 이야기를 했고, 어떤식으로 나의 딸이 그것을 착각했는지를 말했다. 나는 그녀가 자신의 아버지와 말을 나눌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다고 하였다. 하지만 나는 그녀에게 무력한 피해자로서의 역할에서 벗어나는데 도움을 줄거라 했다. 그녀는 그녀의 어머니쪽의 이야기를 물려받았고 그 이야기의 색에 젖은 것이었다. 그녀는 성인으로서 자기 자신에 결정권이 있으며 그녀의 아버지측의 이야기도 들어볼 수 있으리라고 했다. 하지만 그녀는 아직 그래본적이 없었고, 나는 그녀가 과거보단 미래에 집중할 수 있도록 했다. 이야기가 이어지면서 나는 마리가 작은 목소리와 행동을 보였다는것에 눈치를 챘다. 나는 그녀의 감정을 잘 이해할 수 있고, 자기 자신처럼 관련지을수 있다했다. 그녀 자신이 아버지와의 시간을 많이 잃었기에, 하지만 그런 시간도 이젠 흘러간 다리밑의 물이었다. 아무리 긴 시간이 흘러도 그 어떠한 테라피로도 흘러간나날은 메울 수가 없었다. 그 비참한 현실과 맞닥들여 재주좋게 무언가 찾을뿐이었다. 이건 건드리기 껄끄러운 선이었다. 허나, 움직이지 않는다면 그녀는 이 상황 그대로 계속 채울수 없는 과거를 원해가며 무력하게 살게 보였다. 동정심이 때로는 사람을 도울 수 있지만, 때로는 경계선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 경계선은 미래로 향하는 스타트 지점이기에 마냥 과거를 볼 수는 없다. 그녀는 아직도 아이였던때처럼 선택권없이 아버지에게 다가갈 여력을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때로 자기자신이 작은 아이인 아버지를 머릿속으로 그리고 때리는 상상까지 했다고한다. 그녀는 확실하게도 화가 나있었다. 그리고 화나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이 세상사에선 당연한 것이란걸 말하면서 [노말라이즈]시켰다. 나는 한가지의 실험을 권해왔다. 나는 그녀에게 방 한쪽에 어머니가 자신의 옆에 서있는 것을 머릿속에 그린다음, 그 지점으로부터 아버지가 있는 다른편에 걸어가는 상상을 하라는 것이었다. 지정된 지점으로 걸어가서 무엇을 할것인가는 말을 나눈다던가 가서 옆에 서있거나 할 수 있을 수 있을거라 봤다. 그녀는 갑작스런 실험에 부담감을 느꼈다, 그리고 무서워했다. 나는 할 수 있는 모든것을 동원해 그녀에게 힘을 주려했다, 그리고 나는 그녀에게 선택지를 주었다. 나는 그녀에게 그녀 자신이 현재로 24살이라는 사실을 자각시켜주었다. 나는 그녀에게 작은 목소리 대신에 등을 쫙 피고 (그녀는 등이 아프다고 여러번 얘기했었다.) 선택지가 있는 어른의 경지에 서도 된다하였다. 조금씩 느리지만, 그녀는 실험을 하기를 승락했다. 그녀는 한걸음씩 차츰차츰 쓰러지지 않게끔 자신을 도와가며 걸어가기 시작했다. 끝내, 그녀는 아버지가 있는 지점에 도착하였다. 그리고 나는 누군가를 그녀의 아버지역으로 삼기위해, 한사람을 아버지가 서있어야하는 곳에 서도록 해보았다. 그녀는 말을 전혀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그녀에게 기분이 어떤지를 물었고, 그녀가 쓸수있는 감정표현을 여러가지 문장으로 만들어주었다. 나는 그녀에게 여러가지 선택권을 지니게 하려 여섯가지정도의 감정표현을 주었다. 그녀는 말하기에는 아직도 조금 더 격려가 필요한듯 했다. 그녀의 숨은 가뻤다. 그 이유가 명확해졌을때는 그 가쁜숨이 그녀의 아버지와 하프시스터에 대한 [고통]에서 생긴것이었다. 그녀는 그에게 질문을 하고 싶어했지만, 나는 그녀에게 질문대신 말만 걸라고 하였다. 나는 질문에 무언가를 속이는 요소가 있을수도 있기 때문에도 그렇지만, 그녀가 그에게 다가갈 수 있을 이유를 만들기 위한 역할이기도 했다. 마침내 그녀는 말을 걸 수 있었다. 그녀는 자기 자신의 분노와 아픔에 대해 그에게 설명했다. 그리고 그녀는 그를 보는게 반가웠다고 얘기했다. 그녀는 주로 그녀의 근심과 불화들을 털어놓았다. 아버지 역할을 하는 사람은 그녀에게 자신도 그녀를 봐서 반갑다 얘기하였다. 그녀는 그런 말을 기대하고 있진 않았었기에, 놀랐다. 이 세션은 그녀에겐 아주 어려운 것이었다. 나는 최대한 쉽게 만들으려 노력하였다. 예를들면 그녀에게 이건 그저 테라피 그룹세션일 뿐이라는 등의 자각을 심어주었다. 그리고 그녀앞에 있는건 진짜 아부모님이 아니며, 바닥은 대나무로 만들어져 있을뿐이라는 말들을 건내주었다. 그런 노력이 그녀의 안에 있는 감정같은 것들을 그나마 가볍게 만들었다. 나는 그녀의 걸음을 따라 같이 걸어주었으며, 여러가지 말과 도움을 주는 동시에, 그녀를 계속 어른인 상태로 있게끔 하려 하였다. 이것은 게슈탈트 치료 요소중 자유로운 형태의 실험, [세이프 에머전시]의 예제였다. 이러한 실험은 실제로는 아주 어려운 부분들을 파고들어, 가능한의 서포트를 해주며 이끄는 것이었다. 그러므로써, 실험 참가자는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실험이 새로운 규정을 만드는데 쓰여서는 안되고 그것이 새로운 헤어나올 수 없는 해야만한다는 강박관념이 되어서는 안된다. 그저 새로운 것은 모험과 자각, 그리고 선택지를 쥐어주는데 있어서 중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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