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7월 9일 목요일
Case #26 - 받음과 주기
트레이시는 혼자 여행하는 것을 무척 좋아한다. 그녀는 지금의 독신생활을 즐기고 있었다. 그녀는 몇주에 한번 정도 자기집에 돌아갔으며, 그런 생활이 그녀에겐 적합했다. 그녀는 도심에 한 아파트 유닛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아주 높은 스탠다드를 가지고 있었으며, 그 어떠한 남자도 그녀와 싸울 운명이었을거라 가장 적합하다고 하였다. 그녀는 그녀의 삶이 자기 자신만의 것이라 느낀다한다. 그녀의 아들은 다 컸기때문에, 가족관계로 책임은 없어보였다. 그녀는 그녀의 삶과 일을 즐기고 있었다. 허나, 조금 시간이 흐른뒤, 그녀는 집에 돌아갈때마다 패닉을 느끼기 시작하였다한다. 나는 깊이 파고들기 시작하였다. 나는 그녀의 부모에 대해 물었다. 그녀는 자유롭게 성장했다고 하였다. 그녀의 어머니는 아이들 몇에 의해 바쁜 삶이었고, 그녀의 아버지는 그녀 자신에 대해 조금은 톰보이같은 구석을 가질 수 있게 했다. 그녀의 아버지는 그녀를 귀여워 하였다한다. 그렇지만, 그녀가 가족이 관심을 보일때는 압박감을 느끼게 되었으며, 좋은 아이로서의 행동하는 모습을 보여야했다한다. 그녀는 그 압박감에 의해 행동을 할까 말까였을 뿐이었다. 그녀는 가족에게 의식될때와 자유로움을 느낄때가 반대되었으며, 그 사이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야기가 끝나고, 나는 그녀와 그녀의 남편의 관계를 더욱 깊이 알기위해 한 실험을 권유했다. 서로를 바라보며 둘다 우뚝 섰다. 거머쥔 손은 의식되고 싶어함을 뜻했다. 멀리하는 손은 자유를 원함을 뜻했다. 곧바로 그녀는 복잡해진 모습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의식되는것을 꺼려한다하며 압박감을 이기지 못하며 혼동했다. 나는 그녀가 얼마나 자주 남편에게 의식되는 것을 자기 자신이 바라본 적이 있냐고 물었다. 그녀는 지금보다도 더욱 자유를 느끼고 싶다고 더했다. 나는 이후 어느정도의 책임을 가지지 않고 살고 싶은가를 물었다. 그녀는 자신이 1년에 2번정도 집에 몇일씩 돌아감으로서 그 이외의 시간은 자기 자신을 위해 쓰고 싶다고 답변했다. 이건 나 자신과는 맞지않는 관계론이었다. 하지만, 그녀에겐 그녀 나름의 관계론이 있으리라 나는 이해하려 들었다. 그래서 여러가지를 토대로 삼아서 나는 실험을 시작했다. 그녀는 원해지는 입장에 대해서는 아주 잠시만의 시간을 소요하는 것을 요구했으며, 자유로움을 원했다. 그녀는 남편에게 의식되는 것을 꺼려한다 답하였다. 나는 상황을 들추어 보았다. 나는 남편역을 하면서, 나는 약속한 손 바디랭귀지로 그녀의 의식을 끌어보이는 모션을 보였다. 바로 그 때, 그녀는 멀리하기 시작했다. 그것도 아주 강한 거부의식을 보였다. 그녀는 거부감 뿐이 아닌 분개의 요지도 보였다. 그녀는 그와 함께 있을때는 그가 무언가를 꼭 호소하는 것처럼 느꼈으며, 그러므로써 그녀는 무언가를 계속 제공하고 있지만 받는 것은 없다는 관념이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분개하게 된바이고, 일이 어떻게 돌아간건지 알 수 있었다. 남편을 멀리하는 그녀, 그 와중의 가까이 하려는 남편, 그래서 더욱 더 멀리하려는 여자. 그래서 나는 하나의 핸드 바디랭귀지 시그날을 더했다. 그것은 나눔. 그녀는 확실하게도 무언가를 제공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그래서, 나는 남편역에 나눔의 조건을 걸고 여자측은 받음을 조건으로 걸었보았다. 하지만 이 상황은 그녀는 그녀에게 [고통]을 가져왔다. 그녀는 정말 아무것도 받은게 없는듯한 생각을 느낌을 가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녀는 전에 몇년간 주기만 한 적이 있었던 때가 있었다한다. 어찌된들, 나는 그녀에게 현재의 시점으로 돌아오라고 말했다. 그리고, 나는 그저 받기만 하는 입장으로 들어가보라 했다. 그녀는 그것에 동의하였다. 그리고 받는 입장에 선 후에, 그녀는 받는것에 대한 긍정적인 태도를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조금 뒤, 그녀는 꺼려하기 시작했다. 받는것에는 무언가 주는게 따른다는 염려를 하기 시작하였다. 그 일로 무언가 조금 더 보이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나는 서로 바꿔가면서 행동해보자는 권유를 하였다. 나는 그녀에게 무언가를 주었고, 그녀는 받았다. 바로 그 후, 그녀가 꺼려하는 행동을 보일때, 우리는 받음과 나누는 역할을 서로 바꿔보았다. 그녀는 주는 행동을 하기 시작하였다. 이유는 빚을 지는 것을 갚으려는 행동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저 받았다). 그녀가 안전하다고 느끼는 범위선까지만 받았다. 그녀는 곧 빠른 리듬을 익혔고, 몇초간의 역할의 바뀜을 서로 목격했다. 하지만, 그녀는 전혀 꺼려하는 모습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녀는 한 부분에만 치우치지 않았다. 경험상으로 그녀는 많은걸 겪은 것처럼 느꼈다. 왜냐하면 그녀는 이런 상황을 원했었지만, 가능하지 않게되었기에 포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중요한것은 이 실험으로 일구어낸 상황이 치료와 고치는 약이 된게 아니라, 새로운 경험에 의하여 자아의식을 심게하여, 그녀가 자신이 지금까지 처해있던 상황의 비해와 그에 대한 더욱 더 깊은 이해를 하게끔한 점이었다. 게슈탈트의 실험은 [해결책]보다는 한 사람의 세계를 넓혀주는 것에 대한 목적을 가지고 여러가지 가능성을 늘려주는데 있었다. 실험에 중요한 재료들이 주변에 있는게 적을때는 힐링에 관련된 효과도 보일 수도 있을 수도 있다. 이러한 프로세스는 위 분야의 주제를 위해 여러가지 들추어 보기위해 쓰여졌다. 그녀가 꼭 느껴야한다는 점에 중요성을 놓지 않아도 되며, 그녀는 그저 리듬을 타는게 중요하다는 점이 뚜렷해졌다. 나 자신을 참가시켜서 나는 그녀가 어떤 시점에 갇혀있는지를 알 수 있었고, 그녀가 필요로 하는 것과 그녀의 시야에 어떤 시스템을 심겨주는 것이 직접적으로 가능해지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여러한 대답을 줄 수가 있었다. 나는 이 실험에 [주는 것]을 더함으로서, 그것이 없었지만 없이는 그녀에겐 너무도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무언가를 제공함으로써, 그녀도 무언가 꺼림없이 무언가를 받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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